로지텍(Logitec International S.A.)은 개인용 컴퓨터와 기타 디지털 제품을 위한 입력 및 인터페이스 장치의 세계 선두 제조업체 중 하나입니다. 마우스 생산업체로 가장 잘 알려진 이 회사는 코드, 무선, 광학 및 레이저를 포함한 수많은 모델에서 5억 개 이상의 필수 장치를 출하했습니다. 첫 번째 제품인 마우스 성공을 기반으로 2000년대 초 로지텍은 PC와 콘솔 게임을 위한 트랙볼, 키보드, 웹 카메라, 조이스틱 및 기타 컨트롤러, 멀티미디어 스피커, PC와 게임기 헤드셋 및 마이크, 휴대폰 헤드셋, 3차원 (3D) 모션 컨트롤러 및 고급 리모컨을 포함한 다양한 인터페이스 장치에 진출했습니다. 이 회사는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지만 로지텍은 점점 더 수익의 80%를 차지하는 소매 시장을 공략해 왔습니다. 로지텍은 스위스에 법인화되었으며 해당 주식은 스위스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본사는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있으며 실리콘 밸리의 인재 기반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로지텍(Logitec)의 역사
컴퓨터를 개인화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발명품들 중 하나는 컴퓨터 마우스였습니다. 컴퓨터 선지자이자 선구자인 더글라스 C. 엥겔바트(Douglas C. Engelbart)에 의해 개발된 새로운 컴퓨터 입력 장치는 1963년 스탠퍼드 연구소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엥겔바트는 계속해서 그 개념을 다듬었고, 1968년까지 엥겔바트의 팀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정보처리협회연합 가을 공동 컴퓨터 회의 (American Federation of Information Processing Societies' Fall Joint Computer Conference)에서 그 당시 "마우스"라고 불렸던 그 장치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엥겔바트의 마우스는 컴퓨터 역사의 방향을 바꿀 것이고 10년 후 로지텍을 회사로 출범시키게 되었습니다. 마우스의 첫 번째 상업적 발표는 또한 고도로 훈련된 프로그래머들의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마우스에 의해 통제되는 컴퓨터가 개인과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최초의 "윈도" 형태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보여주게 됩니다. 마우스와 함께 엥겔바트는 텍스트와 그래픽의 화면 결합과 조작, 하이퍼텍스트와 하이퍼문서 (후에 인터넷 발전에 매우 중요하게 될), 화상 회의와 같은 기본적인 컴퓨터 개념들을 불러오게 됩니다.
엥겔바트는 또한 두 명의 스탠포드 대학교 공학과 학생인 스위스 출신의 다니엘 보렐(Daniel Borel)과 이탈리아 출신의 피에루이지 자파코스타(Pierluigi Zappacosta)를 포함한 새로운 세대의 엔지니어들과 컴퓨터 산업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증명했습니다. 급성장하는 실리콘 밸리 장면에 영감을 받아, 보렐과 자파코스타는 소프트웨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그들만의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를 꿈 꾸었던 두 엔지니어
1970년대 후반 유럽의 상황은 첨단 기술 기업들이 특히 컴퓨터 기술과 제품 개발을 위해 막대한 벤처 자본과 기타 재정적 지원을 찾을 수 있었던 미국과 대조적으로 오래된 기업 모델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필요한 벤처 자본을 찾을 수 없었고, 수백만 달러의 비용을 기꺼이 감수할 은행도 없었기 때문에 보렐과 자파코스타는 자신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하려는 꿈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엥겔바트의 발명은 두 사람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자파코스타가 포춘에 말했듯이, "우리는 마우스 안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지능 아래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렐과 자파코스타가 마침내 사업을 시작한 것은 컴퓨터 마우스였습니다. 1981년 두 사람은 스위스에서 디자인된 마우스의 미국 배급권을 취득했습니다. 하드웨어는 두 사람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꿈보다 더 쉬운 매출을 증명했습니다. 다수의 스위스 투자자들의 지원으로, 보렐과 자파코스타는 나중에 로지텍으로 알려진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1988년까지 채택되지 않았던 이 이름은, 프랑스어로 소프트웨어를 뜻하는 'logiciel'과, 기술을 뜻하는 'tech'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원래 차고에서 운영되던 이 회사는, 스위스 애플사에 본사를 두고 설립되었지만, 처음부터 미국의 강한 존재감을 가지고 설립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쏘아올린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의 최대 수혜자
보렐과 자파코스타의 시기는 행운이 따랐습니다. 1982년 떠오르는 컴퓨터 스타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회사의 컴퓨터 시스템에 엥겔바트의 마우스를 포함시키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결정은 컴퓨터 산업에 혁명을 일으켜 최초의 진정한 "개인용" 컴퓨터를 위한 길을 열게 될 것입니다. 다른 컴퓨터 디자인들도 곧 그 마우스를 채택할 것입니다. 원래 그 마우스를 경멸하던 보렐과 자파코스타는 그 기기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흥미를 빠르게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디자인과 제조 방법에 있어서 계속해서 개선을 이루었습니다.
로지텍은 처음에 애플 컴퓨터 시스템을 위한 마우스를 생산했습니다. 다른 제조업체들이 마우스로 제어되는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로지텍의 마우스도 이러한 시스템에 맞게 조정되었습니다. 로지텍은 제품을 유통하기 위해 소매 경로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대신 회사는 컴퓨터와 다른 전자 기술 잡지, 신문, 무역 저널에 광고를 냈습니다.
로지텍은 또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서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984년에 회사는 휴렛패커드 (HP)에 의해 그 회사의 컴퓨터 시스템에 사용될 마우스를 생산하기로 계약되었습니다. 그 HP 계약은 로지텍을 (당시 메타포로 알려졌던) 컴퓨터 주변기기 지도에 올려놓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는 AT&T, 올리브티, 컨버전스 테크놀로지스, DEC 등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획기적인 매킨토시 컴퓨터 시스템의 출시 과정에 있던 애플은 곧 자사의 컴퓨터 마우스 요구사항들 때문에 로지텍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이 즈음에 로지텍은 또한 1990년대 말 무선 데스크톱에 대한 증가하는 수요를 예측할 수 있는 제품인 최초의 무선마우스를 선보였습니다.
로지텍은 급속하게 성장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에 캘리포니아에 공장을, 1986년에는 대만에 공장을, 1988년에는 아일랜드 코크에 공장을 새로 짓는 등 제조 능력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로지텍은 대만 시설에서 생산을 시작하면서 IBM과 개인용 컴퓨터 제품군을 현재까지 가장 큰 고객으로 인수할 수 있었습니다. 1988년 매출이 4천만 달러에 달했을 때 로지텍은 국제 S.A.라는 이름으로 합병하여 기업공개를 통해 취리히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습니다.
로지텍의 성공 스토리 - 확장과 구조조정 그리고 성공
1990년대 초중반, 마우스를 넘어 확장하다
1985년 12월 C7 마우스를 출시하면서 로지텍은 소매 채널에 진출했습니다. 이후의 "에르고노믹" 디자인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정사각형 모양의 마우스인 C7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지텍의 특징이 될 3개의 버튼 디자인을 특징으로 했습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걸쳐 로지텍은 컴퓨터 시장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위치를 구축했습니다. 1991년 합작 투자 계약은 회사를 중국 본토로 가져와 제조업 입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 정부와 홍콩으로부터 추가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로지텍도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1988년 이 회사는 최초로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는 주변 기기인 휴대용 스캐너를 생산했습니다. 1990년 계약으로 이 회사는 조이스틱 제조업체인 캐나다의 어드밴스드 그라비스(Advanced Gravis)와 아미가, 아타리, 탠디 등 당시 사용 가능했던 다양한 컴퓨터 시스템용 마우스 스틱 등을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1년 로지텍은 어드밴스드 그라비스의 지분을 58퍼센트로 늘리면서 로지텍을 어드밴스드 그라비스의 이사회에 앉혔습니다. 또한 1991년 로지텍은 업계 최초로 무선 기반 무선 마우스인 마우스맨 코드리스를 선보였습니다.
같은 해 로지텍은 캘리포니아의 가젤 그래픽스 시스템즈(Gazelle Graphics Systems)의 50%를 인수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인수 작업을 벌였습니다. 이 회사는 1993년에 가젤의 완전한 소유권을 인수하여 로지텍에게 가젤의 혁신적인 트랙볼 기술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했으며, 이는 곧 성장하는 휴대용 컴퓨터 시장의 중요한 특징이 됩니다. NASA에 의해 처음에 개발된 새로운 3D 포인팅 기술의 도입은 로지텍을 실리콘 그래픽스용 마젤란 3D 포인터와 다른 고급 CAD/CAM/CAE 워크스테이션과 함께 고급 그래픽 시장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독일의 스페이스 컨트롤(Space Control) GmbH와 함께 개발된 마젤란은 유럽 시장에서 스페이스 마우스(Space Mouse)라고 불릴 것입니다. 이후 1998년 로지텍은 스페이스 컨트롤의 지분 49%를 인수했습니다.
스캐너와 디지털카메라의 실패
로지텍의 모든 투자가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1993년, 회사는 케이블 텔레비전 대기업인 TCI와 함께 시애틀에 본사를 둔 3D 컴퓨터 디스플레이 헤드셋 제조업체인 버추얼 I/O에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이 제품은 시대를 조금 앞서는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회사는 또한 다른 제품들 중 사운드맨 스피커 시스템과 함께 사운드카드 시장으로의 진출을 시도했습니다. 회사의 사운드 제품들은 또 다른 사운드카드 기술인 사운드블래스터를 사실상의 표준으로 채택하기 시작하던 컴퓨터 산업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습니다.
한편, 로지텍은 계속해서 포인팅 기기와 조이스틱 시장을 뛰어넘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이 회사는 스캐너와 디지털카메라라는 두 가지 유망한 시장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로지텍은 스캐너 시장에서 휴대용 및 시트페드 스캐너 디자인으로 초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곧 수많은 경쟁 사업체의 제품들로 넘쳐나는 이 시장에 로지텍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가격 전쟁이 발발하여 로지텍의 이윤을 심각하게 잠식했습니다. 로지텍에게 더 나쁜 일은, 시장이 시트페드 디자인에서 플랫베드 디자인으로 분명히 옮겨갔다는 것입니다. 1990년대 후반까지 로지텍의 스캐너 사업부는 큰 손실을 보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소니, 필립스 등과 같은 주요 제조업체들이 디지털카메라 시장에 뛰어들면서 로지텍은 해당 시장의 틈새시장으로 밀려났습니다.
경제위기와 다양한 경쟁자의 진입의 위기를 구조조정으로 극복하다
미국과 유럽의 장기적인 경제 위기로 악화된 회사의 재정 문제로 인해 로지텍은 1995년에 사업을 재편해야 했습니다. 이 회사는 미국과 아일랜드의 제조 시설을 폐쇄하고 생산지를 중국과 대만으로 완전히 옮겼고 500여 명을 감원했습니다. 제조의 중심지는 현재 중국 쑤저우이며 로지텍은 1994년에 제조 시설을 열었습니다.
1994년에 3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로지텍도 핵심 제품군과 가장 무서운 경쟁자와의 새로운 경쟁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주변기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독자적인 마우스 제품과 조이스틱을 출시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전 세계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거의 독점에 가까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포인터 시장에 빠르게 뛰어들어 약 40퍼센트의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포인트 제품으로 50퍼센트까지 마진을 얻었던 로지텍은 이 소프트웨어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인하했습니다. 그럼에도 로지텍은 세계 20대 컴퓨터 제조업체 중 18개 업체를 포함한 고객들과 함께 선두적인 OEM 마우스 공급업체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로지텍의 구조조정으로 회사는 1995년에 약 2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96년이 되자 회사는 다시 한번 1억 번째 쥐의 생산을 축하하는 시간에 맞추어 수익성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지목 장치를 중심으로 다시 뭉친 로지텍은 그 수치를 두 배로 빠르게 증가시켜 1998년 12월에 2억 번째 쥐의 생산을 발표했습니다. 회사의 스캐너 부문은 1997년 스톰 테크놀로지에 매각되었고, 스톰은 로지텍에 10퍼센트의 투자를 했습니다. 1997년 3월 로지텍은 나스닥 시장에 자사의 주식을 상장시켜 4백만 미국 예탁결제원 주식을 매각했습니다.
새로운 리더십,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인수를 통한 성장
로지텍은 창립 이래 다니엘 보렐(Daniel Borel)과 피에루이지 자파코스타(Pierluigi Zappacosta)가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이들은 CEO와 다른 직무를 함께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1998년 보렐은 회사 회장직에서 은퇴했습니다. (자파코스타는 1997년 로지텍을 떠나 생체 인식 전문 회사인 디지털 페르소나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로지텍은 애플 컴퓨터의 전 임원이자 애플 클라리스 사업부의 성공을 이끈 설계자인 게리노 데 루카(Gerrino De Luca)를 데려왔습니다. 클라리스의 CEO를 역임하고 한때 애플의 최고 자리에 오르기도 했던 데 루카는 회사의 설립자 스티브 잡스의 복귀와 함께 애플에서 사임했습니다. 데 루카는 빠르게 로지텍의 이미지를 마우스와 조이스틱 제조기를 넘어 선도적인 컴퓨팅 인터페이스 회사의 이미지로 향상했습니다.
데 루카의 첫 번째 행보 중 하나는 1998년 9월에 완료된 2,620만 달러의 계약인 커넥틱스사로부터 퀵캠 PC 비디오카메라 사업부를 인수한 것입니다. 퀵캠은 개인용 컴퓨팅 시스템에 쉽게 통합되도록 설계된 최초의 비디오 카메라 중 하나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출시된 눈알처럼 생긴 독특한 퀵캠은 업계의 선두를 사로잡았습니다. 인터넷의 부상과 더 빠른 모뎀 및 위성 및 케이블 인터넷 접속을 포함한 기타 데이터 전송 기술의 등장으로 화상 회의 기술이 실행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인수는 로지텍을 PC 비디오 카메라 분야에서 1위로 올려놓았습니다.
1998년 말까지 3개의 로지텍이 계약한 QuickCam 제품을 새로 구입한 것 외에도 로지텍은 게임, 인터넷 및 기타 컴퓨터 응용 프로그램과의 사용자 상호 작용성을 향상하기 위해 설계된 "포스 피드백" 기술의 선구자인 Immersion Corporation의 10% 지분을 구입했습니다. 1999년 초 로지텍은 또한 컴퓨터 전략 및 FPS (1인칭 슈팅) 게임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게이밍 마우스와 같은 차세대 마우스 디자인을 포함한 여러 신제품을 선보였습니다. 로지텍은 1998년 4억 달러 기록을 넘어서며 계속해서 수익을 올려왔습니다. 비록 마우스 판매가 계속해서 선두를 달렸지만 로지텍은 이미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는 인터페이스 장치로부터 수익의 25%를 창출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넷 비디오카메라 (혹은 웹캠)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는 로지텍을 컴퓨터 산업의 성장주로 다시 세우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2000년 3월까지 한 해 동안 매출은 31퍼센트 급증하여 6억 1,570만 달러를 기록한 반면, 순이익은 73퍼센트 급증하여 3천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로지텍의 주식은 인터넷 거품의 절정기였던 한 해 동안 놀랍게도 174퍼센트나 증가했습니다. 2000년에 로지텍은 3억 번째 마우스를 판매하여 세계 마우스 시장의 70퍼센트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했습니다.
개인 소비자를 위한 자사 브랜드 제품군 확대와 게이밍 주변기기로 부가가치를 확대하다
데 루카의 주도하에 있었던 중요한 움직임은 OEM 제품에서 소매 시장을 위한 마진이 높은 브랜드 제품으로의 큰 변화였습니다. 2001년까지 매출의 80%가 소매 부문에서 발생했습니다. 이는 로지텍이 2000년대 초반 심각한 PC 판매 침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2001 회계연도 동안 로지텍은 게임기용으로 설계된 첫 번째 주변기기인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2 (Sony PlayStation 2)용 Driving Force 레이싱 휠을 출시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콘솔용 주변기기를 15개 이상 더 개발했는데, 가장 인기 있는 두 개는 2002년에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과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용 무선 컨트롤러입니다. 로지텍은 2001년에 최초의 무선 옵티컬 마우스인 Cordless Mouse Man Optical을 선보이며 또 다른 새로운 마우스 버전을 개척했습니다. 광 기반 추적 시스템을 사용한 이 옵티컬 마우스는 이전 유형의 볼 기반 마우스를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3월 로지텍은 워싱턴에 본사를 둔 밴쿠버(Vancouver)를 7,300만 달러에 인수함으로써 오디오 주변기기 분야에서 입지를 상당히 강화했습니다. 랩텍은 PC 스피커, 헤드셋 및 마이크를 생산했고 로지텍은 다음 몇 년 동안 이 라인을 크게 확장하여 휴대폰용 헤드셋뿐만 아니라 게임 콘솔 및 엔터테인먼트용 오디오 제품으로 확장했습니다. 동시에 로지텍은 새로운 블루투스 무선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2002년에 그것은 사용자가 PC에서 30피트 이내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제어할 수 있는 포인팅 장치를 소개했습니다. 다음 해에 회사는 윈드 캔슬링 기술이 특징인 모바일 프리덤 헤드셋(Mobile Freedom Headset)을 출시했습니다. 2002년에 소개된 수많은 다른 신제품 중에는 PC 문서로 전송하기 위해 쓰인 메모를 전자적으로 캡처하는 카메라가 내장된 펜인 Io Personal Digital Pen(아이오 퍼스널 디지털 펜)이 있습니다. 또 다른 마우스 이정표는 로지텍이 2003년 9월 5억 번째 마우스를 출하했을 때 달성되었습니다.
2004년까지 로지텍은 개인용 컴퓨터 산업이 침체된 기간 동안 일련의 놀라운 성공을 누렸습니다. 데루카가 합류한 이후 매출과 수익 모두 6년 연속 성장했습니다: 매출은 4억 770만 달러에서 12억 7천만 달러로, 수익은 710만 달러에서 1억 3천220만 달러로 뛰었습니다. 로지텍은 2004 회계연도 동안 100개 이상의 신제품을 출시했으며 로지텍 브랜드로 4천7백만 대 이상을 출하했습니다. 인간과 기계의 인터페이스 부문에서 새로운 틈새시장을 계속해서 찾던 로지텍은 인트리그 테크놀로지스 (Intrigue Technologies, Inc.)를 현금 2천9백만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온타리오 주 미시소가에 본사를 둔 인트리그는 텔레비전, DVD 플레이어 등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제품을 위한 첨단 원격 제어 장치를 생산했습니다. 이후 2004년 로지텍은 중국 쑤저우에 초기 용량을 30퍼센트 늘린 새로운 공장을 지을 계획을 발표했으며 세계 최초의 레이저 무선 마우스도 선보였습니다. 회사 측은 팔로 알토에 본사를 둔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Agilent Technologies Inc.)와 공동 개발한 레이저 추적 시스템이 LED 기반 광학 마우스보다 20배나 더 높은 감도를 제공했다고 말했습니다.
로지텍의 미래 - 사람을 연결하는 회사
주변장치와 액세서리의 최강자로 등극하다
2010년 이후 로지텍은 다양한 주변 장치와 액세서리를 포함하도록 제품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Jaybird 및 Astro Gaming과 같은 회사의 인수는 게임 및 오디오 산업에서 앞서 나가려는 로지텍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움직임은 가전제품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로지텍은 사용자 중심 디자인과 최첨단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주변기기 업계의 선두주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이러한 역동적 인기술 환경에서 로지텍은 혁신과 연결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진화하는 소비자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고 디지털 공간의 추세를 예측하려는 꾸준한 노력을 바탕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로지텍이 미래를 향한 항로를 계획함에 있어 그들의 비전은 분명합니다. 기술 산업에서 계속해서 선구자가 되어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최초 창업 시점부터 디지털 공간과 다양한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한 제품들이었던 마우스, 웹캠, 조이스틱과 같은 하드웨어부터 디자인과 기술의 혁신을 바탕으로 미래에는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열정으로 나 아가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원격 작업이 늘어나고 게이밍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미묘한 요구사항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기업 로지텍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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